아... 이 새벽에 나는 또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이냐...
어쨌든 이번에 내뱉고 싶은 얘기는 지혜의 정체에 대한 얘기이다.
그 전에 왜 이런 거창한 제목이 붙었는지 연구 좀 하셨다. ㅋㅇ~
[명사]
1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
2 <불교>육바라밀의 하나. 제법(諸法)에 환하여 잃고 얻음과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마음의 작용으로서, 미혹을 소멸하고 보리(菩提)를 성취하는 힘이다. ≒지혜바라밀.
[명사]
1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
2 알고 있는 내용이나 사물.
3 <불교>‘벗’을 이르는 말.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사람이 착한 사람으로서 세상을 올바르게 지도하면 선지식이라고 하고, 나쁜 사람이면 악지식이라고 한다.
4 <철학>인식에 의하여 얻어진 성과. 사물에 대한 단편적인 사실적·경험적 인식을 말하며, 객관적 타당성을 요구할 수 있는 판단의 체계를 이른다.
[명사]
1 생각하여 아는 작용. 또는 지혜와 견식.
2 <불교>기신론에서, 모든 대상이 모두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지 못하고 대상에 대하여 이치에 맞지 아니한 그릇된 생각을 일으키는 식(識)의 작용을 이르는 말.
[명사]
사물이 발전하거나 나아가지 못하고 한자리에 머물러 그침.
지식에는 2가지가 있다. 간단히 말해서 아는 것(知識)과 알아가는 것(智識)
그러나, 후자는 다들 잘 모를 것으로 간주하고(사실 나는 몰랐다.),
차라리 지혜라는 말을 쓰도록 하시겠다.
하고 싶은 말은 제목에 그대로 나와 있다. "智慧의 停滯"
내가 가끔 하는 얘기 중에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대학원에 다니면서 똑똑해 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사실 학부 때나 대학원 때나 마찬가지였던거 같아."
음... 다시 곰곰이 생각해봐도 맞는 얘기다.
사실 조금 더 거슬러 가자면, 고등학교 정도에 나의 지혜는 정점을 지나 정체기로 접어들었는지도 모르겟다. 그래도 대학 때는 학문적 지혜의 증가보다는 학문외적 지혜가 갑작스레(?) 넓어졌다고나 할까...
(물론, 쳇바퀴와 같은 따분한 고등학교시절에서 벗어나 멀리 대전에서 자유를 마음껏 만끽하면서 삶의 질이 달라졌기 때문임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물론 전공공부를 하면서 이래저래 아는 것, 주워들은 것이 늘기는 했지만 나의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이 늘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학교를 떠나 사회 짬밥을 먹은지도 얼추 4년이 되어가는 동안 만만치 않은 사회현실을 몸으로 느끼면서도 지혜가 늘었다기 보다는 이미 나의 가치관을 여기저기 들이대며 삶에 대한 나의 입장을 보다 확고하게 굳혔다고나 할까.
한마디로 이미 아는 게 틀리지 않았다를 확인하는 정도가 아니였나 싶다.
아직도 학교에 있으면서 박사고년차에 접어든 후배의 고민을 잠시 들으면서 내가 과거에 했던 고민을 그대로 후배도 하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고, 내가 그 후배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잠시 했지만...
"형 학위 다시 하고 싶은 생각 없어요?" 라는 후배의 질문에...
"내가 하는 일에 학위 따위는 필요가 없어. 산업공학 학위는 더더욱 필요가 없지. 차라리 수학이나 물리면 몰라도..." 라고 답하는 나의 모습은 학교를 떠나던 4년전의 입장 그대로인 것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학위보다는 돈을 버는게 낫다는 생각이었지만...)
또 다시 얘기가 삼천포로 빠지는 것 같다... 이 얘기가 아니었는데...ㅋㅋ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자로서 말하고 싶은 얘기는
지식을 쌓기 위해서는 먼저, 지혜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나 자신도 초등학교, 중학교 때 그리 우수한 학생이 아니었던 것 같다.
(우등상 못 탔으니까... 응? 국민학교 때는 못탄게 확실한테 중학교는 가물가물하군ㅡ_ㅡ)
그런데, 용케도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하는 요령을 알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지혜가 아닐까. 그 요령은 대학, 대학원 그리고 현재까지도 잘 써먹고 있지 않나 싶다.
(다소 페이스가 떨어져 가는 듯 하기는 하군...)
물론 지식은 노력만 한다면 많고 적음의 차이가 있겠으나 누구든 가질 수 있는 것이지만, 지혜는 내 생각에는 노력한다고 반드시 얻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떻게 보면 흔히 하는 말로 "득도"하는 것이랄까. 그리고, 이 몸은 건방스럽게도 스스로를 "득도한 자"라고 생각을 하는게지.
그래서 내 눈에 "아무리 말해도 말이 통하지 않는(지혜가 없는) 사람"은 상종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내가 볼 때 "득도한 자"들과 말을 통하면서 일하려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혼자서 공부할 줄 모르는 학생, 일을 시켜도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 심지어 자기 일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인간 모두 지혜가 없는 자들이다. 득도한 내가 볼 때는 한심한... 더 나아가서는 안타까운 인간들이지만 이 사회에 널린 자들이 지혜가 없는 자들이니 이를 어쩌겠는가.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고 했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고 하지 않았던가...
어쨌든 결론은 나의 지혜가 정체기를 맞아 버벅대고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과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소시적 읽기는 했으나 난해함으로 인해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 책)에 나오는 "새는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온다"라는 명구절처럼 뭔가 한 단계 레벨업을 하기 위한 액션플랜을 세우고 몸부림 쳐봐야 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드는 밤임을 밝혀두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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